안식
인도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리석은 농부가 논을 개간하고, 논에 물을 대어서 그의 논은 물이 풍성한 기름진 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농부는 논의 물이 이웃의 다른 사람 논으로 흘러가는 것이 늘 못마땅하고 심통이 났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자기 논의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사방을 다 막아버렸습니다. 다음 해에도 농부의 논에는 많은 양의 물이 흘러 들어왔지만 물이 나갈 곳이 없다 보니 썩기 시작해서 결국 벼도 썩어 쌀을 얻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충이 된 하루살이는 입도 없고 항문도 없어서 먹고 배설하지 못하기에 길어야 2-3일 밖에 살지 못합니다. 모기나 벌은 외적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없기에 태어날 때 자기 몸에 가지고 있던 에너지를 다 사용하면 죽습니다. 반면에 인간은 계속해서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받고, 받은 에너지를 밖으로 배출하며 살기에 오랫동안 생명을 연장하며 삽니다. 흔히 하는 말 중에 사람은 잘 먹고 잘 배설하면 건강하다고 하는데, 일리 있는 말입니다. 우리 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재물도 그렇습니다. 내 손에 들어온 재물을 움켜 쥐고 살면, 그 재물은 썩어 결국에는 나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손을 펴서 함께 나누면 나도 복되고, 타인도 복되는 win-win의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난한 형제에게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그 손을 그에게 펴라(신 15:7-8)고 말씀합니다. 물질도 들어오고 나가는 곳이 있어야 썩지 않는 복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안식의 개념도 이런 배경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일주일에 6일 동안은 열심히 일하고 일곱째 날에는 안식할 것을 말씀합니다. 일곱째 날은 우리 삶의 쉼표이자 배출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쉬는 날 없이 계속해서 일한다면 그 삶은 input은 많지만 output은 없기에 언젠가는 탈진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펜실베니아에는 광산촌이 많았는데, 광산 안에는 노새들이 있어서 짐을 나르는 일을 했습니다. 노새들은 6일 동안은 캄캄한 갱도에서 일하고 하루는 들에서 햇볕을 쬐며 쉬게 했는데, 그래야 시력을 보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도 그렇습니다. 거룩한 주일에는 세상 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거룩한 빛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인 소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일 예배는 내 영혼의 output임을 기억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성도가 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