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 환자의 아버지
한국에서 나병 환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최흥종 목사(1880-1966)가 있습니다. 최흥종은 젊은 시절 망치란 별명으로 장터와 뒷골목을 주름잡던 건달이었습니다. 6살 때 어머니를 잃고, 엄한 계모 아래서 살던 그는 19 살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자신의 주먹만을 믿고 삽니다. 그러던 어느 날 11살 어린 배다른 동생이 “성님은 사람을 때리는 게 재미있어?”라고 안타까운 듯 묻습니다. 그 뒤 마음을 잡은 최흥종은 광주 양림동에서 의료 선교사로 사역하던 포사이트(Forsyte:1873-1918) 선교사의 조수로 일합니다
어느 날 포사이트가 한 환자를 나귀에 태우고 왔는데, 포사이트는 선교사들이 ‘인간으로 오신 예수’라며 존경했던 인물입니다. 포사이트가 데려온 나환자는 온몸이 썩고, 고름과 진물이 흘러 송장이나 다름없어 보였는데, 포사이트는 환자의 겨드랑이를 양손으로 부축하며 걸음을 옮깁니다. 그때 환자가 한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놓쳐버리자 포사이트는 최흥종에게 “지팡이를 집어주라”고 합니다. 그러나 최흥종은 고름과 핏물이 잔뜩 묻은 지팡이를 잡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지팡이를 집어 들고 나환자에게 건네주자 나환자는 웃으면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그때 최흥종의 가슴에 뭔가 뜨거운 것이 밀려왔는데, 최흥종이 ‘작은 예수’로 거듭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훗날 최흥종은 자신의 땅 1000평에 한국 최초의 나환자 수용시설인 광주나병원을 설립해서 나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합니다. 일제 때에는 나환자 수백 명과 함께 열하루에 걸쳐 광주에서 서울까지 행진해 총독에게 전남 고흥 소록도에 있는 나환자촌을 확대해줄 것을 요구했고, 그 결과 오늘날 소록도 나환자 갱생원이 설립됐습니다.
최흥종 목사가 죽었을 때, 광주 시민들은 광주 최초의 시민장으로 장례를 치루었는데, 그의 관 뒤엔 수백 명의 나환자와 걸인이 뒤따르며 “아버지, 저희들은 이제 어찌합니까”라고 뒹굴며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우리 시대의 마지막 성자’라고 부릅니다. (롬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기록된 성경은 우리에게 영적인 교훈을 주기 위함인데, 성경 말씀 뿐만 아니라 기독교 역사 또한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경계가 있습니다. 은둔의 나라였던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에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선진들의 신앙 정신이 오늘 우리에게도 이어지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