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헬라어 중 ‘파라곤’(paragon)이란 단어가 있는데, ‘칼 가는 숫돌’이란 뜻입니다. 칼을 갈지 않고 쓰기만 하면 결국 무뎌져서 쓸모없게 되는 것처럼 사람도 자기보다 재능 있는 사람,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계속 부딪혀 몸과 생각의 칼날을 날카롭게 갈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잠언에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는 말씀이 있는데, 파라곤과 일맥상통한 내용입니다.
파라곤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중요한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칫 이기고 성공하기 위해서만 살다보면 그 중압감으로 인성이 황폐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오래 전부터 스포츠라는 인성 교육을 통해 이기는 법 뿐만 아니라 지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스포츠하면 무조건 이기는 것만 생각합니다. 1등만 기억하고 나머지는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올림픽에서 선수들이 값진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따고서도 기뻐하기보다는 우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스포츠 하면 이기는 것만 생각하는 문화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물론 운동 경기의 기본 자세는 이기는 것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지만 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때에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일어나 파라곤 정신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잘 지는 법도 배우는 것이 스포츠 정신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음악에서 콩쿠르(concours)란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무슨 콩쿠르, 누가 어디 콩쿠르에 나가서 우승했다…’ 콩쿠르는 프랑스어인데, 그 어원은 ‘같이 뛴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콩쿠르 하면 서로 경쟁하는 것만을 생각하는데, 실제 의미는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함께 뛰면서 서로에게 도전을 주고 받는다는 것입니다. 경쟁(competition)이란 단어 또한 그 어원은 ‘가슴을 마주본다’는 의미입니다. 누군가와 경쟁할 때 정정당당하게 서로의 가슴을 마주보고 싸워야지 상대방을 속여 갑자기 뒤통수를 치거나 옆구리를 찌르는 행동은 정당한 경쟁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도 하고 음악, 미술도 합니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스포츠와 음악(미술)을 권장하는 것은 단지 몸의 건강과 취미만을 위함이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 인성 교육을 하는 겁니다. 학생들은 운동을 통해 바르게 지는 법을 배우고, 음악(미술)을 통해 친구들과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면서 서로에게 도전을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감사 주일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되 이기게 하신 것만 감사하지 않고, 지게 하신 것도 감사할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