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angchurch saginaw
5일 전
물댄동산
언어는 복음을 전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물론 그림이나 음악 등 다른 방법으로도 복음을 전할 수 있지만 언어만큼 분명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도구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언어에 달란트(은사)가 있는 사람은 그만큼 복음을 전하는 데 요긴하하게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자유롭게 사용할 줄 아는 헬라파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헬라 지역을 다니면서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언어의 힘입니다.
과거에는 문자를 읽고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이 곧 권력인 때가 있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나 수메르의 쐐기문자를 터득하는 것은 당시 권력 엘리트로 진입하는 길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한글 창제입니다. 백성들이 읽고 쓸 수 있는 문자를 왕이 만들어 반포한다는 것은, 왕이 자신의 권력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조선의 사대부들은 한글 창제를 반대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백성들이 문자를 읽고 쓰게 되면 자신들에게 집중된 권력이 그만큼 약해진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세 카톨릭 교회는 라틴어로 된 성경만을 썼기에 성직자들만이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자연히 종교 권력은 성직자들에게 집중됐고, 대신 일반인들은 성경이 아닌 성화(聖畵)나 성상(聖像)으로 신앙교육을 받았기에 사람들은 성상을 우상처럼 섬기는 잘못을 범하게 됐습니다. 이처럼 당시 성직자들은 자신들만의 성경 해석 능력을 하나의 권력 도구로 삼아 중세 천년을 암흑의 시대로 만들었습니다.
성직자들의 권력에 반기를 든 사람이 있었는데,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입니다. 그는 라틴어 성경을 모국어인 독일어로 번역하여 일반 노동자, 농민, 중소상인들이 자유롭게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했습니다. 루터의 성경 번역은 성직자만의 성경 독점권이 무너지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이후에 성경은 각 나라 말로 번역되어 누구든지 자국어로 성경을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처럼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게 되었습니다(사 11:9). 오늘날 우리는 우리말로 된 성경 뿐만 아니라 원하기만 하면 원어로 된 성경(히브리/헬라)도 가질 수 있습니다. 중세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그러나 '풍요 속에 빈곤’이라는 말이 있는데, 혹 지금의 우리 성경 읽기가 그렇지 않은지요? 독서의 계절 가을에 나눔교회 모든 성도들이 책(성경) 한 권의 사람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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