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도로명 중에 퇴계로(退溪路)가 있습니다. 이 이름은 조선시대 유학자 이황(李滉)의 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퇴계 이황 선생은 여러 차례 벼슬을 했는데, 벼슬을 그만둘 때마다 그의 고향인 퇴계로 돌아와서 살았습니다. 그는 관직에 있을 때도 고향을 사모하여 집무실에 고향의 풍물이 담긴 그림을 걸어 둘 정도였고, 그래서 아호를 그의 고향 이름을 따서 퇴계라 했습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몇 가지 표현들이 있습니다. 수구초심(首丘初心), 여우는 죽을 때 자기가 살던 굴이 있는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뜻입니다. 월조소남지(越鳥巢南枝), 월나라 새는 다른 나라에 있어도 남쪽에 있는 고국을 흠모하여 남쪽으로 뻗은 가지에 둥우리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만주에서 온 말(馬)은 언제나 만주가 있는 북쪽 바람을 향해 선다고 하는데,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잊지 못합니다. 어릴 때 다른 나라에 입양된 사람들 중에는 나이가 들어서 자신의 친부모와 고향을 찾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 마음 깊은 곳에는 고향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두 개의 고향이 있는데, 세상의 고향과 하늘의 고향입니다. 세상의 고향이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곳이라면 하늘의 고향은 영원한 곳입니다. 특별히 성경은 하늘의 고향을 가리켜 본향(本鄕, 근원적인 고향)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고향과 본향은 같은 의미이지만 본향은 좀 더 근원적인 면에서의 고향을 심화한 표현입니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본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다”고 고백합니다(27:8). 둥지를 떠나 떠도는 새도 언제가는 다시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사람 또한 이 땅에서 이리저리 다니면서 살다가 언젠가는 자신의 본향으로 돌아갑니다.
추석이나 설이 되면 우리나라에서는 민족 대이동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고향을 떠나 살았던 사람들도 이날만큼은 힘들어도 고향으로 갑니다. 그곳에는 부모님이 계시고, 내 존재의 뿌리와 흔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본향을 향해 가는 날은 죽음을 통해서인데, 내가 이 땅에서 죽는 날은 내 영혼이 본향으로 떠나는 날입니다. 명절에 고향에 가는 사람들은 도로가 막혀 힘든 시간이지만 마음은 평화롭습니다. 성도에게 죽음은 공포와 두려움의 날이 아닌 나를 지으시고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날이고, 더 이상의 고통과 아픔과 눈물이 없는 천국 본향에 들어가는 날입니다. 돌아갈 본향이 있음에 감사하는 한주간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