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종서의 ‘아름다운 구속’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후에 변화된 마음과 모습을 노래하는데, 마지막 노래 가사가 이렇습니다. “… 처음이야 내가, 드디어 내가, 사랑에 난 빠져 버렸어 / 혼자인 게 좋아 나를 사랑했던 나에게 또 다른 내가 온 거야 / 아름다운 구속인걸 사랑은 얼마나 사람을 변하게 하는지 살아있는 오늘이 아름다워.” 마지막 가사에 보면 사랑을 가리켜 아름다운 구속이라고 노래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내 모든 생각이 그에게 맞춰지기에 내 삶은 구속받는 느낌이지만, 그러한 구속감은 오히려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아름다운 구속이라는 의미일 겁니다.
결혼은 부부간의 계약입니다. 계약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묶이는 것(bond)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부부가 되면 서로가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기에 개인의 자유는 제약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 부부가 어떤 상황으로 인해 오랜 기간 떨어져서 지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론상으로는 잠시나마 서로에게 묶이는 것이 아니기에 홀가분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을 갖습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사랑은 구속이 아닌 구속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내적인 평안과 안정과 기쁨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 말씀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나의 멍에를 메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입니다.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말씀입니다. 멍에는 삶을 구속(속박)하는 장치이기에 멍에를 메면 그만큼 불편하고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의 멍에를 메면 마음이 쉼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주님이 말씀하신 멍에는 달리 말하면 성도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입니다. 성도가 책임과 의무를 이행할 때,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란 말이 있습니다. ‘교통, 소통’이란 뜻인데, 이 말은 라틴어 “Comunus”에서 왔습니다. “Co”는 “함께”란 뜻이고 “munus”는 “짐 혹은 책임”이란 뜻으로 함께 짐을 진다, 함께 책임을 나누어 진다는 의미입니다. 서로 간의 소통이 원활하게 되는 것은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지고, 그것을 책임감 있게 감당할 때 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신앙 안에서 나에게 주어진 멍에(구속/속박)를 회피하지 않고 책임감 있게 감당할 때,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한 주님이 주는 평안과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구속(속박)되는 것은 아름다운 구속입니다. 노래 마지막 가사를 이렇게 바꾸어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구속인걸, 말씀은 얼마나 사람을 변하게 하는지, 살아있는 오늘이 아름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