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의 유작으로 ‘탕자의 귀환’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헨리 나우웬과 관련된 일화가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유명한 강사였던 헨리 나우웬은 영혼의 안식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중 1983년에 우연히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 포스터를 봅니다. 3년 후 그는 직접 상트페테르브르크에 있는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찾아가 이 그림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오랫동안 묵상합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결정을 합니다. 그는 1986년 하버드대학교 교수직을 사임하고, 정신지체 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쉬데이브레이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 1996년 심장마비로 죽을 때까지 장애인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렘브란트는 17세기를 대표하는 네델란드의 화가로 젊은 시절부터 초상화 화가로 이름을 날리며 많은 부와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삶은 점점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 렘브란트는 첫 아내에게서 네 명의 자녀를 얻었는데, 그 중 세 명이 세상을 떠납니다. 이때 렘브란트는 또 다른 여인과 사귀는데, 그녀 또한 절도죄로 12년 동안 정신병원에 감금됩니다. 이후에 렘브란트는 집안일을 도와주던 하녀(헨드리키에)와 관계를 갖고, 그 사이에서 한 명의 딸을 얻습니다. 렘브란트는 방탕한 생활과 가족들의 불행으로 인해 예술에 전념하지 못했고, 그의 명성은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게다가 경제 상황까지 좋지 않아 1656년에는 개인 파산을 신청합니다. 자신이 가진 예술품과 보석들을 경매에서 모두 처분했지만 여전히 갚아야 할 채무가 있어서 자신의 집과 작업 도구까지 압류를 당합니다. 그러던 렘브란트의 삶을 완전히 붕괴시킨 것은 어려움 중에도 자신을 헌신적으로 도왔던 하녀 헨드리키에의 죽음과 유일하게 남은 아들 티투스의 죽음이었습니다. 렘브란트는 이듬해인 1669년에 비통함을 견디지 못하고 초라하게 인생을 마감합니다.
렘브란트는 모든 것을 잃은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그것이 ‘탕자의 귀환’입니다. 렘브란트는 자신의 부질없었던 삶이 성경에 나오는 탕자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동시에 렘브란트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품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을 보면 삶의 회한과 소망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인생의 시작과 과정도 중요하지만 끝을 어떻게 마감하느냐는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인생의 끝은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돌아갈 마지막 곳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