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브라질 리오에서 올림픽이 있었습니다. 네델란드의 코넬리센 선수와 그녀의 말 파르치팔은 승마에서 금메달 유망주였습니다. 코넬리센과 파르치팔은 올림픽을 위해 수년 동안 훈련해 왔고, 지난 런던 올림픽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얻었기에 금메달의 기대가 높았습니다. 그런데 파르치팔이 리우에 와서 갑자기 뺨이 부풀고 40도 고열에 시달리면서 상태가 악화됩니다. 전문가들은 파르치팔이 거미나 모기와 같은 독충에 물린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파르치팔의 전담 수의사는 바로 치료에 들어갔고, 어느 정도 상태가 호전되었습니다. 코넬리센 선수 또한 마구간에서 계속 잠을 자며 파르치팔과 함께 했습니다. 파르치팔이 호전되면서 코넬리센은 수의사와 상의한 끝에 경기에 출전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당일에 코넬리센은 파르치팔의 등에 올라타 경기장으로 갈 때, 평소와 다름을 느낍니다. 이것은 선수와 말만이 아는 상황으로 파르치팔이 많이 호전은 되었지만 이전의 상태는 아니었던 겁니다. 이에 코넬리센은 금메달보다 친구를 위해 과감히 경기를 포기합니다. 코넬리센은 “친구이자 동반자인 파르치팔이 일생 동안 나를 위해 노력한 것을 감안하면 그를 위해 경기를 포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한국 영화 중에 “터널”이 있는데, 한 사람이 터널을 지나가다가 터널이 붕괴되면서 그 안에 갇히게 됩니다. 사고 신고를 접수한 당국은 갇힌 사람을 구하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계속되는 붕괴와 시간이 지연되면서 점점 관심이 줄어듭니다. 심지어 이제는 할 만큼 했으니 포기해야 될 것 같다고 주장합니다. 그때 구조 대장이 아직 저 안에 사람이 있고 살아 있는데, 어떻게 포기할 수 있느냐고 항변합니다. 우리 사는 주변에도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 또한 은연 중에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존중하지 않을 때가 있지 않은지요? 성경은 성도를 가리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예수 믿기 전의 죄악된 마음을 정리하고,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해서 당신의 유일한 독생자를 세상에 보냈고,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를 희생할 만큼 세상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며 사랑하셨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인 성도는 하나님의 사람 사랑하는 마음을 본받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2:3)고 말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