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하면 많은 사람들은 프랑스의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로댕하면 그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로댕의 대표작은 ‘생각하는 사람’말고도 ‘칼레의 시민’과 ‘지옥의 문’등 다수가 있습니다. 미술사에서 로댕은 조각을 해방시킨 사람이라는평가를 받습니다. 고대부터 그가 살았던 19세기 말까지 조각은 종교, 정치적인 면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고대 신전과 중세 성당에는 많은 조각들이 장식으로 있었고, 중세 이후에는 조각이 왕권을 찬양하는 도구로 사용됐습니다. 이처럼 조각은 종교와 정치의 시녀 노릇을 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조각은 건물의 벽이나 그에 딸린 부속 받침대에 의지해 만들어졌지, 조각 그 자체로 독립된 공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로댕에 와서 비로소 조각 자체가 독립된 공간과 역할을 갖게 되었습니다.
로댕은 얼굴과 손이 표정의 풍부함을 가장 잘 보여준다는 생각에서 많은 두상과 손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로댕만큼 손을 소재로 많은 작품을 만든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로댕의 손 작품 중 ‘대성당’(1908년작)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로댕이 죽기 10년 전에 완성한 작품으로 두 개의 손이 마주보고 있는 작품입니다. 저는 처음에 조각을 봤을 때(사진), 왜 제목을 ‘대성당’이라고 했을까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보면서 그 이유를 어렴풋이 추측해 보았습니다. 두 개의 손은 한 사람의 오른손과 왼손이 아닌 둘 다 오른손입니다. 즉 서로 다른 사람의 오른손이 마주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서로 다른 손이지만 마주보면서 열개의 손가락이 하늘을 향해 마치 기도하듯 혹은 찬양하듯 뻣어 있습니다. 성당은 어떤 곳인가요? 나와 너를 포함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곳입니다. 바로 이 모습을 두 개의 손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요? 물론 저만의 생각이고 해석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지 않고,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만 기적을 베푼 것이 아닌 이방인들에게도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위해서만 십자가에서 죽고 3일만에 부활한 것이 아닌 이방인들을 위해서도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셨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에서 위대한 말씀을 선포합니다. (갈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나눔교회가 로댕이 만든 ‘대성당’이 되었으면 합니다. 비록 모든 것이 다른 나와 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마음과 신앙을 가지고 매시간 하나님을 경배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