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에는 영국의 유명한 왕들과 정치가, 작가, 과학자, 예술가의 무덤들이 있습니다. 그 중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1813-1873)의 무덤이 있는데, 그의 묘비에 새겨진 그의 직업은 세 가지입니다. ‘Missionary, Traveler, Philanthropist’ 선교사, 여행가, 박해주의자. 리빙스턴은 선교를 위해서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리빙스턴은 선교지인 아프리카가 궁금해서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더욱 더 그 땅을 사랑하게 되었고, 가는 곳마다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동시에 리빙스턴은 평생을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예로 팔려 나가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하며 투쟁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리빙스턴은 1841년부터 1873년까지 30년이 넘도록 아프리카 내륙 구석구석을 여행했습니다. 리빙스턴 이전의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중부와 남부의 내륙 지방으로 들어가지 않았기에, 그곳은 미지와 공포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리빙스턴으로 인해 아프리카 내륙의 사정이 유럽에 알려졌고, 이를 계기로 해안가에 머물던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내륙으로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무렵 아프리카의 식민화가 본격화됐는데, 이 일에 영국이 앞장섰습니다. 특히 리빙스턴이 여행했던 지역 대부분은 영국의 식민지가 됐습니다. 영국은 리빙스턴을 통해 아프리카 내륙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었고, 그렇게 축적된 지식과 정보는 영국이 쉽게 아프리카 지역을 지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아리러니하게도 선교사인 리빙스턴의 여행과 사역은 본의 아니게 아프리카가 영국과 유럽의 식민지가 되는 데 일조한 셈이 되었습니다.
유럽의 나라들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그리고 동양의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을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첨병과도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겉으로 유럽 나라들은 복음을 알지 못하는 미개한 나라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 내용은 인간의 추악한 탐욕과 무자비한 살상으로 가득 찼습니다. 유럽인들은 식민지 원주민들을 동원해서 그 땅의 풍성한 자원들을 수탈해 막대한 부를 형성했고, 그때부터 유럽은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른 복음의 역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복음은 내가 누군가를 누르고 나만 잘사는 것이 아닌 함께 더불어 좋은 것을 나누며 잘사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인 하나님 나라는 바로 그런 나라입니다. 이 땅에 함께 더불어 사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더 편만하게퍼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