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에는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격언이 새겨져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 격언을 좋아해서 사람들과 대화할 때 자주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 아테네는 귀족과 시민이 광장에 모여서 중요한 사안은 서로 토론하고 최종 결정은 다수결로 정했습니다. 그만큼 말을 논리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오늘날 법정에서는 변호사가 피고인을 대신해서 변론하지만 당시 아테네에서는 당사자가 시민들 앞에서 직접 자신을 변호했고, 시민들은 이를 듣고 투표로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이 재판에서 이길 가능성이 많았고, 이에 아테네 사람들은 소피스트에게 변론술을 배웠습니다. 소피스트(sophist)는 ‘지혜로운 사람’이란 뜻으로 사람들에게 지식과 지식을 전달하는 웅변술을 가르치는 교사였습니다. 사람들은 소피스트를 통해 세상의 지식을 배웠고, 지식과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변론술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가 가르치는 것은 참된 지혜와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합니다. 철학은 인간과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인데, 소피스트는 진리 추구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얕은 지식들을 사람들에게 전한다고 비난합니다. 실제로 소피스트에게 배운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세상의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교만하게 자신의 지식을 자랑합니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하면서 먼저 자신이 무지한 것을 깨달아야 된다고 역설합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참된 지혜를 찾게 되고, 참된 지혜를 알아야 바르게 행동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사용한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은 성경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성경은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가를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깨달았던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가리켜 티끌이나 재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고(창18:27), 시편 73편의 아삽은 자신은 우매무지하고 주 앞에서 짐승과도 같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22절).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라고 말하고(6:5), 베드로는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눅5:8). 이처럼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 때, 비로소 나는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나 자신을 아는 사람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