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화군생(接化群生)이란 말이 있습니다. 신라시대 대학자 최치원의 말입니다. ‘사귈 접(接)’은 ‘손 수(扌)’변에 ‘처녀 첩(妾)’인데, 이성(異性) 간의 접촉처럼 서로간에 친밀한 관계를 말합니다. 화(化)는 변화될 화로, 접화군생은 모든 생명이 만나서 서로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변화한다는 뜻입니다.
최치원은 접화군생의 의미를 좀 더 쉽게 해석합니다. “꽃 한송이가 피려면 햇빛도 있어야 하고, 나비나 벌도 와야 하고, 바람도 있어야 하고, 비도 와야 하고, 벌레도 있어야 하고, 땅 속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도 있어야 하고, 소쩍새도 울어야 한다. 꽃 한송이가 피기 위해서는 이면에 많은 관계들이 얽혀져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시련과 위기도 있지만 그걸 극복해야 꽃 한송이가 핀다.”
어찌 꽃 한송이만 그렇겠습니까? 인간의 삶 또한 많은 관계들로 얽혀 있어서 서로에게 긴밀한 영향을 줍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한 사람의 성장은 많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짐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부모님의 사랑과 돌봄, 형제들 간의 우애, 선생님들의 가르침, 친구들과의 우정과 경쟁 등 이 모든 것들은 한 사람이 삶의 열매를 맺는데 필요한 관계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들 속에는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닌 아픔과 슬픔도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을 견뎌낼 때 비로소 귀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복음이 열매 맺는 것도 이런 이치가 아닐까요? 복음은 언제 어떻게 열매를 맺을까요? 단순히 성도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배달(전달)해 주면 사람들이 알아서 복음을 받아 새생명을 얻나요? 물건은 파손되지 않게 잘 배달해 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잘 배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될 때 비로소 복음의 열매가 맺힙니다. 성경은 복음 전하는 사람을 가리켜 ‘증인’이라고 하는데, 헬라어로 ‘말튀스’라고 합니다. 말튀스라는 단어에서 순교자를 뜻하는 ‘martyr’ 가 나왔다고 합니다. 참된 전도자는 사람들 앞에서 단지 복음을 전달하는사람이 아닌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부대끼며 눈물과 희생으로 복음의 씨앗을 심는 사람입니다. 복음의 열매는 힘들고 지난한 삶의 관계 속에서 맺혀지지만 그 열매는 삶의 고통과 아픔을 상쇄하고도 남을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단 12:3) 『…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