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출신의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Adelbert von Chamisso)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있습니다. 주인공 슐레밀은 우연히 한 파티에 참석했다가 신비한 인물(악마)를 만나 이상한 제안을 받는데, 그림자를 팔라는 겁니다. 주인공은 그림자를 판 대가로 무엇이든 마음대로 꺼낼 수 있는 ‘행운의 자루’를 받습니다. 주인공은 평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그림자를 팔고, 엄청난 부를 얻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곧 그림자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것임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들은 주인공이 많은 부를 가졌지만 그림자가 없는 것을 보고는 그를 멀리합니다. 그때 악마가 다시 나타나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 너의 그림자를 다시 돌려줄테니 죽은 뒤에 너의 영혼을 자기에게 팔라는 겁니다. 갈등 끝에 주인공은 악마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인간에게 그림자는 어떤 의미일까요? 책의 내용에 따르면 그림자는 인간이 인간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주인공이 그림자를 상실했을 때, 그가 아무리 돈이 많고 모든 것을 가졌다 해도 사람들은 그를 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오히려 배척하고 멀리합니다. 인간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닌 더불어 살면서 타인들로부터 인정받고 받아들여질 때, 인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큰 비극입니다. 조선시대 백정은 분명히 사람이지만 양반과 평민은 백정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구한말 시대에 백정의 자녀들이 교회에 나오자 양반과 평민들이 집단으로 항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20세기 초반 미국의 흑인들은 백인들로부터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흑인들은 공공장소 사용도 차별을 받았는데, 흑인들은 화장실도 다른 곳을 써야 했고, 백인들이 타는 버스도 탈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타인의 인정과 환대가 필요한데, 이처럼 그림자 없이 살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그림자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직업이 없어서, 몸이 약해서 인간다운 대접을 못받는 경우입니다. 성경은 그림자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표로 고아와 과부를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고아나 과부를 해롭게 하지 말라(출 22:22)고 하시며, 친히 하나님이 이들의 아버지와 보호자가 이심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들 뒤에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고아나 과부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는 것과 같다고 경고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그림자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림자를 돌려주는 성도가 됩시다. 이것이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