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온 초창기 개신교 선교사들 중 알렌(Horace N. Allen) 박사가 있습니다. 알렌은 의학을 공부한 후에 의료 선교사로 상해로 갔다가 상해에서 적당한 자리를 찾지 못하던 중 친구의 권유로 한국행을 결심하고, 1884년 9월에 제물포에 도착합니다. 당시 조선은 선교사가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알렌은 미국 영사관의 공의로 일을 시작합니다. 알렌은 틈틈히 자신의 어학 선생인 이하영에게 복음을 전했고, 나중에 이하영은 미국 워싱턴 주재 한국 대리 공사가 됩니다.
1884년 12월에 갑신정변이 일어납니다. 갑신정변은 서구 문물 제도에 눈을 뜬 개화당이 민비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의 부패와 무능에 대해 일대 혁신을 일으킨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보수파의 핵심 인물인 민영환은 중상을 입었고, 많은 명의들이 민영환을 살리려 했지만 제대로 치료를 못합니다. 당시 조정의 외교고문인 묄렌도르프의 주선으로 알렌은 민영환을 맡아 서양의술(지혈과 봉합치료)로 민영환을 살려냅니다. 민영환은 회복된 후에 감사편지와 함께 10만냥을 알렌에게 보냈고, 궁중에서는 알렌 박사의 의술을 인정해 고종의 어의로 임명합니다. 나중에 알렌은 조정의 도움을 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병원인 광혜원을 세웁니다. 나중에 고종은 광혜원을 제중원(중생을 구제하는 집)이라 이름하였고, 이후에 제중원은 1904년 미국인 사업가 루이 세브란스의 기부로 조선 최초의 현대식 병원인 세브란스 병원으로 거듭납니다.
알렌은 일본이 조선을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도 단호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1885년에 일본 역도들이 민비를 살해한 민비시해 사건이 터졌습니다. 일본은 반성보다는 변명문을 발표했고, 주변 열강들은 힘없는 조선의 편을 들기보다는 일본을 지지합니다. 특히 미국은 1882년에 맺은 조미우호조약을 무시하고 오히려 일본 편에 서서 일본의 변명문을 지지합니다. 이때 알렌은 민비시해의 음모는 일본 공사관에서 진행된 점을 워싱턴에 계속 보고했고, 일본의 만행을 규탄했습니다. 1905년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는 대신 일본은 조선에 대한 독점 이익을 갖는다는 가쓰라 태프트 밀약이 체결되자, 알렌은 루스벨트 대통령을 찾아가 조미수호조약을 맺어놓고 일본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안된다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루스벨트는 항의하는 알렌을 제중원에서 해임하고, 본국으로 송환한다는 소환장을 고종에게 보냅니다.
알렌 선교사는 의술로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했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안위를 위해서도 독립운동가 못지 않게 헌신했던 사람입니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동방의 작은 나라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올 수 있었습니다. 선진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한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특별히 알렌의 고향은 오하이오 주 톨레도인데, 미시간에 사는 우리에게는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선교사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