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있는 다리 중 마포대교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서울시와 삼성생명은 자살방지 캠페인을 벌여 시민들로부터 공모를 받아 좋은 문구들을 마포대교 양쪽 난간에 놓았는데, 문구들은 이렇습니다.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혼자서 꾹꾹 담아온 얘기 시원하게 한번 얘기해 봐요” “긴 다리를 건너면 겨울 지나듯 새 봄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지요” 이 캠페인은 2012년 9월부터 시작됐는데,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세계일보에 따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났는데, 캠페인을 시작하기 전보다 투신자 수가 늘어난 겁니다. 2011년 11명(사망 5명)이었던 투신자가 2012년 15명(사망 6명), 2013년 93명(사망 5명), 2014년 184명(사망 5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위로라는 말은 분명 좋은 말이지만 효과적인 위로가 있는가 하면 역효과가 나는 위로도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역효과적인 위로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은 욥의 친구들입니다. 욥은 신앙심이 깊은 당대의 가장 큰 부자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많던 재산과 자식들을 잃고, 본인은 심한 질병에 걸려 자신의 출생마저도 저주할 정도로 고통을 받습니다. 그때 욥의 친구들이 찾아와서 욥을 위로하는데, 오히려 그들의 말은 상처난 곳에 소금을 뿌리는 것처럼 욥의 마음을 더 고통스럽게 합니다. 우리 말에 염장(鹽醬)을 지른다는 말이 있는데, 염장은 소금과 간장을 말합니다. 과거 죄인을 심문할 때 상처 부위에 소금을 뿌려서 고통을 더하게 한데서 유래된 말이라고 합니다. 바로 욥의 친구들의 말은 욥의 마음에 염장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욥에게 모든 것이 이렇게 된 것은 다 네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니까 하나님께 중심으로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이들의 위로는 결코 욥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장은 욥의 입장에서 욥의 마음을 헤아리기 보다는 전통적인 교리와 자신들의 경험에 근거한 자기 주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욥을 위로하는 사람들’이란 표현은 하나의 관용어로 상대방을 위로하려다가 오히려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가장 좋은 위로는 어떤 걸까요? 달리 위로의 말은 하지 않아도 그냥 옆에 함께 있어 주는 거 아닐까요?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쓴 마지막 편지인데, 당시 바울은 차디 찬 감옥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딤후 4:17) 아마도 바울은 자신 곁에 묵묵히 계신 주님으로 인해 큰 위로를 받았을 겁니다. 그 주님은 지금도 내 곁에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