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국인 최초이자 동아시아 최초로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를 지낸 한동일 교수가 쓴 책입니다. 이 책은 한동일 교수가 서강대학교에서 라틴어를 강의한 내용입니다. 수업 내용은 단지 라틴어 강의만이 아니라 라틴어를 통해 인생을 이야기합니다.
책에는 영어 부정사 No의 유래를 소개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부정사 No는 고대 인도 유럽어에서 부정을 뜻하는 개념인 ‘밤에 흐르는 물의 모호함’에서 나왔습니다. 상고 시대에는 깜깜한 밤을 밝은 바다의 움직임이 끝나고, 어두운 바닷물이 땅으로 흘러와 생기는 현상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무엇을 봤느냐고 물으면 ‘물(na)만 보았다’고 대답했습니다. 물만 보았다는 대답은 결국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인도 유럽어의 물을 나타내는 ‘na’라는 음에서 ‘아니다’라는 부정관사 ‘no, non’이 유래되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에도 ‘아니다’라는 부정은 밤에 흐르는 물을 상징하는 표시였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상고시대 사람들의 상상력과 표현력에 감탄했습니다. “낮은 밝은 물이 흐르는 시간이고, 밤은 어두운 물이 흐르는 시간이다.” 이것을 좀 더 생각해 보면 성경의 내용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 상태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주석하기 어려운 말씀인데, 한가지 분명한 것은 태초에 땅은 물 속에 잠겨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땅을 가리켜 혼돈하고 공허하다고 했는데, 혼돈은 형태가 없는 무형의 상태를 말하고, 공허는 말 그대로 비어 있는 진공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땅이 물 속에 잠겨 있기에 모양이 없는, 빈 진공 상태였음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태초에 지구는 물이 흐르는 땅이었고, 물 속에는 공간과 시간이 있었습니다. 혹 이런 개념이 상고시대 사람들에게 시간에 대해서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일반 책을 읽으면서 성경의 내용과 연결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중세시대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성경을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교회에 가야 겨우 설교를 통해 몇 마디 말씀을 들었는데, 그 내용 또한 신부가 라틴어로 말했기에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종교개혁가들의 노력으로 번역된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원없이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선진들의 노고를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말씀을 대하는 성도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