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심리학자들이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점검하는 기법 중에 사람들이 말할 때, '나'라는 단어를 얼마나 쓰는 가를 조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조사 결과 ‘나’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 사람일수록 심리 상태가 불안정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내세우고, 나를 부각시키는 사람은 그만큼 이면에 나에 대한 열등감이 있기에 그 열등감을 포장하고 감추기 위해 자주 나를 드러낸다는 겁니다. 미국의 한 언어학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히틀러는 '나'라는 단어를 53 단어에 한 번씩 썼고, 무솔리니는 83 단어에 한 번씩 썼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는 예수님의 비유 중 어리석은 부자 비유가 있습니다. 한 부자가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마음으로 곡식 쌓아 둘 곳이 적으니 더 큰 곳간을 지어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곳간에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두고, 여러 해 동안 쉬면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생각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내가 네 영혼을 찾으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합니다. 이 짧은 이야기에서 부자는 ‘나’라는 단어를 6번이나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겉으로 볼 때는 많은 것을 소유해 부족함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자기 과시와 더불어 어떤 두려움과 조급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는 글자 하나 차이입니다. 하나님에서 ‘하’자가 지워지면, ‘나’ 내가 남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사탄이 하와를 유혹할 때 했던 말은 네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네 눈이 밝아져 하나님같이 될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죄성을 가진 인간은 내가 하나님이 되어서 내 삶의 주관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데, 성경은 그것을 교만과 죄라고 정의합니다. 죄는 헬라어로 ‘하마르티아’인데, ‘과녁을 벗어난 화살’이란 뜻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벗어나면 내가 하나님처럼 되려는 죄를 짓습니다. 요셉의 언어를 보면 그는 하나님을 주어로 삼아 살았던 사람입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팔려 애굽에 왔지만 정작 요셉은 나를 이곳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있었던 요셉은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되는데, 그때도 요셉은 하나님이 나를 애굽의 총리로 세웠다고 고백합니다. 나는 내 삶의 주어가 아닌 보어補語입니다. 그러기에 나의 자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