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역사상 동전에 사람의 얼굴이 들어간 것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부터입니다. 기원전 49년 1월, 카이사르는 군대를 해산하고 로마로 입성하라는 원로원의 명령을 무시하고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하며 로마로 진군합니다. 원로원은 살기 위해 이탈리아를 떠났고, 카이사르는 로마에서 최고 권력자가 됩니다. 카이사르는 자신이 로마의 통치권자임을 널리 알리고,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동전에 자신의 얼굴을 새겨 유통합니다. 카이사르는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동전뿐 아니라 구리로 만든 동전에도 자신의 얼굴을 넣었습니다. 율리우스의 양아들이자 로마의 초대 황제가 된 아우구스투스(복음서에는 가이사 아구스도로 나옴)도 동전에 자신의 얼굴을 새겨 유통했습니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이후 로마 황제들은 자신이나 후계자의 모습을 동전에 새기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 성인 남자들은 매년 한 차례 성전세를 내야 했습니다. 성전세는 성전 화폐 기준으로 반 세겔을 바쳐야 했는데, 반 세겔은 은 5.7 그램의 무게였습니다. 성전세는 국세나 지방세와는 달리 전적으로 성전 유지나 보수 관리 및 날마다 아침에 드리는 진설병 비용에 사용되었습니다. 성전세로 내는 반 세겔은 로마 정부가 만든 동전은 사용할 수 없었는데, 동전에 황제의 얼굴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두로에서 만든 돈을 사용했는데, 두로의 은 동전에도 헤라클레스의 얼굴과 독수리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로의 동전 또한 십계명을 어기는 것으로 성전세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십계명에 저촉되지 않는 성전세 동전을 만들어야 했는데, 종교지도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두로의 동전을 성전세로 사용했습니다. 이유는 바로 돈의 무게 때문입니다. 성경이 명한 성전세의 세겔은 은 6그램 안팎입니다. 예수님 시대 이전부터 제사장들은 당시 유통되던 돈 가운데 무게가 6그램 안팎의 돈을 찾았는데, 바로 두로에서 만든 동전이 무게에 맞아 사용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는 계명은 무시하고, 단지 무게만 같은 동전을 찾아 사용하면 된다는 편리함(가벼움)을 추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모든 계명은 다 무겁습니다. 사람들은 임의로 말씀의 경중을 나누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다 준엄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눈에 보이는 계명은 지키지만 보이지 않는 계명은 소홀히 여기는 부분을 책망합니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주님의 모든(all) 말씀을 무겁게 받는 성도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