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 채근담(菜根譚)이 있습니다. 채근담은 책 이름 그대로 번역하면 “나물뿌리 이야기”입니다. 송나라 학자 왕신민은 이 뜻을 “사람이 항상 나물뿌리를 씹어 먹을 수 있다면 능히 일백 가지 일을 이룰 수 있다”고 해석했는데, 그 의미는 이렇습니다. “사람이 기름진 고기에만 끌리지 않고 야채나 나물뿌리를 씹고 또 씹어 나물뿌리 특유의 감칠맛과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인내력과 지조가 있다면 힘든 인생 항로도 능히 헤쳐나갈 수 있다.” 이런 경구와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 바로 채근담입니다. 채근담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전한 선제 때 소광이라는 유학자가 태자태부(태자를 가르치는 스승)의 자리에서 사임하자 선제가 황금 20근을, 태자가 황금 50근을 하사했습니다. 소광은 향리로 돌아와 황금을 모두 팔아 일가친척은 물론 이웃을 초청해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집안 살림에는 하나도 사용치 않고 모두 써버릴 작정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소광에게 이것으로 자손들을 위해 사업을 일으키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묻습니다. 소광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나이 이미 늙었으니 어찌 자손들의 일을 생각지 않겠는가? 그러나 대대로 물려받은 농토가 있어 자손들이 부지런히 일하면 족히 의식을 해결할 수 있으니 그 이상 재산을 넉넉히 한다는 것은 자손들을 게으르게 할 따름일세. 무릇 사람이란 어질고 재산이 많으면 본래의 뜻을 잃게 되고, 어리석은 사람이 재산이 많으면 그 허물을 더할 뿐이니,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자손들로 하여금 허물을 더하지 않게 하기 위함일세.”
눈앞에 것만 보고 사는 사람을 가리켜 근시안적(近視眼的)인 사람이라고 합니다. 근시안적인 사람은 당장에 이익이 되는 일이 있으면 훗날 그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생각지 않고 바로 그 일을 합니다. 만약 소광이 근시안적인 사람이었다면 선제와 태자로부터 받은 황금을 마땅히 자기 자손들을 위해서 사용했을 겁니다. 그러나 소광은 멀리 내다볼 줄 아는 혜안(慧眼)이 있었기에 많은 재산을 자손들에게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세상 마지막날에 최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약속을 붙잡고 사는 성도는 근시안적인 삶이 아닌 멀리 내다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성도의 덕목으로 인내를 많이 강조하는데,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고 소유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근시안적인 사람이 아닌 원시안적(遠視眼的)인 사람입니다.